W:찬란한

2016.8.9 불안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

선자: 2016. 11. 5. 23:37


<3> 불안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


 불안의 반대말은 조화다. 불안 자체가 어떤 균형 잡힌 상태를 헤친다는 점과 조화가 불안을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지금 이 순간도 TV를 켜면 '모든 음식에 포함된 당분이 우리의 수명을 재촉할 것이며' '세계 어떤 지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민간인 몇 명이 희생됐으니 여행을 자제해달라' 등의 소식들이 하루에도 열 두 번씩 우리의 귀를 때리며 불안에 떨게 한다. 이쯤 되면 불안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고질적 심리 상태라 할 수 있다. 


 바야흐로 모든 세대가 불안에 떠는 시대다. 청년 세대는 학업, 취업 걱정에 잠 못 들고 기성세대는 가장이라는 이유로 오늘도 기꺼이 돈의 노예를 자처한다. 노년에게 무병장수는 '불치병'으로 낙인찍힌 지 오래다. 사람들을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 근본적인 원인은 '먹고 살기 급급한' 사회 구조에 있다. 그리고 정치 경제는 계속해서 '자본을 향한 맹목적인 이기심'을 조장한다. 학창 시절 '내가 저 아이보다 얼마만큼 더 나을까'를 보여주었던 성적 줄 세우기는 같은 반 친구도 경쟁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뒤처짐에 대한 불안으로 잠을 못 이루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을 향한 맹목적인 경쟁은 내가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이념을 살포한다. 그리고 사람 중 일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한다. 사회는 이들의 '승리'를 아낌없이 칭찬하고 '패배'한 자들을 가차 없이 소외시킨다. 이른바 현대식 약육강식의 논리이다. 이러한 기제는 19세기 제국주의를 낳았고 제국주의국가들은 끊임없이 자원을 공급해줄 식민지를 세계 곳곳에 건설했다. 그 과정과 결과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이제 인류는 불안을 넘어서 공포에 떤다. 또 다른 전쟁, 또 다른 테러 그리고 희생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을 일단 짓밟고 보는 이기심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렇게 배척된 사람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또 다른 피를 부르는, 악순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지쳤다. 불안에 지치고 공포에 지쳤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고 이 악물고 살아남자니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피로한 세상에서 이러한 물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게끔 한다. 귀농과 자연식으로 먹는 웰빙과 웰다잉 열풍이 분다. 하물며 TV에서도 농사를 지으며 하루 세끼를 자급자족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세계 문학상 중 하나인 맨 부커상을 수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동물들이 피를 흘리며 도륙되는 꿈을 꾸고 하루아침에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여주인공이 끝내는 나무가 되길 꿈꾸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런 여주인공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은 소름 끼치게 폭력적으로 묘사된다. 이 한국 소설이 세계적으로 일으킨 반향은 수많은 독자가 그 '폭력성'에 깊이 통감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구 온난화로 보기 힘들어진 펭귄과 북극곰을 에어컨을 틀어가면서까지 잡아다 가둬 구경하는, 이 아이러니한 이기심과 폭력성에 사람들은 지쳐버렸다. 불안과 공포를 넘어 모든 것에 지쳐버린 사람들은 인류가 나아갈 길이 자연과의 조화임을 무의식적으로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안은 모든 위기의 전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할 방법은 조화를 이루는 것뿐이다. 세상과 조화, 자연과의 조화, 나와 다른 사람과의 조화가 그 답이다. '모든 생명은 위험 속에 산다'는 말처럼 생명은 약하고 한순간에 스러질 수 있다. 늘 불안에 떨며 살아가야 하는 것은 그렇게 태어난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간순간 자연이 보여주는 생명력과 느긋함, 평화로움은 짧디짧은 우리의 삶도 자연 속에서는 어떤 숭고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건네준다. 그리고 또한 자연은 그 시작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펭귄들은 매서운 남극의 칼바람이 무리를 덮칠 때 옹기종기 서로 체온을 나누어 다 함께 살아남는다. 이처럼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고자 노력한다면 인류에게 닥칠 매서운 불안감을 다 함께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