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8 남루하게, 오롯이 혼자인 채로.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이따금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한다.
말을 쉬게 하려는 것도, 자신이 쉬려는 것도 아니었다.
행여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봐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려주는 배려였다.
그리고 영혼이 곁에 왔다 싶으면
그제서야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의 삶을 살았던 인간이다. 영혼의 걸음은 생각보다 느리고, 세월은 내가 올라탄 말과도 같은 것임을,
그때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언젠가는 말을 세우고 자신이달려온 쪽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피반느, 박민규"
금방이라도 쏟아질 법한 물이 꽉 찬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뒤뚱 거리며 나는 머릿속의 계산기를 두드린다.
더하기 빼기를 해보다 조심스레 주저앉는다.
십리는 더 남은 길을 멍하니 바라보다 양동이를 내려놓고 내가 걸어온 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주위가 어둑어둑 해진 것인지, 쉴새없이 흐르는 땀때문에 내가 눈을 게슴츠레 뜬 까닭인지
내가 걸어온 길은 체감보다 까마득하다.
내 옆을 말을 탄 누군가가 재빠르게 지나간다.
나의 숨은 헐떡거리는 것 만큼 비참하다.
양동이 물에 비추는 애처로운 행색의 낯 익은 사람이 기웃거린다.
나는 머릿속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숫자를 썼다 지웠다 더하기를 했다 빼기를 했다 하는 얄궂은 계산기를 부셔버렸다.
다시 양동이를 얹고 길을 걷기 시작한다. 누구의 말처럼 황량한 인디언의 그것은 아닐지라도, 나의 길 역시 황량하고 나의 영혼 역시 느리다. 그러함에도 나는 기다려 줄 것이다. 양동이를 얹었기에 나의 걸음 역시 느릴 것임으로, 영혼은 나의 뒤뚱거림을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삶을 관통하는 세월의 힘은, 나의 뒤뚱거림을 참아낼 인내를 가졌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