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5.18 오케이
#1
내가 종교가 우스웠던 건,
오늘 소리지르고 할 말 못 할말 다하고 남 상처주고 한없이 이기적이었던 인간들이
내일이면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죄를 고백하는 순한 양이 된다는 점에서였다.
그래서 난 늘 경계한다.
믿으면서도 늘 한 쪽 발은 빼 놓는다. 역사를 봐도 그게 나을 것 같기에.
-
#2
내가 아는 소위 '힘을 가진 자'들은 늘
용서를 강요하고 이해를 강요한다.
모든 갑과 을의 갈등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용서를 강요한다는 건
을에게 갑이 잘못할 짓을 했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이고
그러나 힘 있는 갑이 도의적인 이유라든지 주위의 시선이라든지 자기의 안위를 위해서라든지
을의 용서가 '필요'하게 되면
그들은 어김없이 용서를 강요한다.
그리곤 이해를 강요한다.
그야말로 을은 갑자기 따귀를 맞고 갑자기 순해진 갑을 보며 어안이 벙벙하다.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노려보고 있는 갑을 보며 어찌할 줄 몰라 어안이 벙벙하다.
갑이, 용서해줘 넌 용서해야만 해. 이해해야지 네가 어쩔거야?
을이 어이없어 하는 사이 뭘 어찌해야 하는줄 모르는 사이,
을이 여기서 더 버티다가 한 대 더 맞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는 사이,
갑은 재빠르게 혼자서 처리를 해버린다.
난 어떻게든 사과 했고, 을은 나를 용서한 '것' 같고 이로써 우리 관계는 정리된거야.
자자 쿨하게 오케이?
한 쪽만 쿨한 사과
한 쪽만 정리된 관계
한 쪽만 후련한 결론
이 세상, 이 사회 속에 수많은 이런 크고 작은, 더럽게도 모순적인 갑과 을의 관계와 수레바퀴 틈 사이에서
넌지시 생각해보기를,
나도 누군가에게는, 또 어떤 순간에는 갑일 지도 모르는데, 갑이 될 수도 있는데.
저러지는 말아야지 하고 생각해본다.
추악하다. 추악하고 음흉하고 비열하다.
그리고 놀라지 말아야지.
갑보다는 을의 입장에 설 일이 더 많을 나이기에
놀라거나 겁먹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