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찬란한

書信

선자: 2014. 5. 12. 00:48







 

 

 

        이것은 당신에게 쓰는 서신인 동시에 나에게 쓰는 글이오.
        내가 이 글을 썼다는 것을 잊을지도 아니면 이 글조차 존재가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니면 당신이, 혹시나 기억을 붙들고 살지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쓰는 글.

 

        내가 이 부적을 우연히 얻게 되었을 때,
        나는 그 인과因果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소.
        처음에는 좌절했던 나의 꿈을 이루는 것이 그 과라 생각했고
        그 다음엔 당신을 만날 인연을 잇는 것이 그 과일지 모른다고 여겼고
        그 다음엔 다른 세상에서 새인생을 사는 것이 그 과라 생각했으나
        

        이제야 뒤늦게 깨닫게 된 그 인과因果는 목숨을 구한 인으로 내 모든 것을 잃어야 하는 것이 과였소.

 

        나의 미래, 나의 명예, 나의 가치관, 내 사람들. 그리고 당신까지.

 

        목숨을 얻으려면 다른 모든 것을 잃는 대가를 치뤄야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이치였소.
        그 중에 하나쯤은 갖고 갈 수 있다고 믿은 내가 어리석었을 뿐.
        어디까지 잃어야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당신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것? 그것조차 사치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소.

 

        기억, 우리들의 기억. 우리들의 기억, 기억. 그것이 내가 잃어야할 마지막 대가.
        

        이제 어떻게 될진 나도 모르겠소.

        우리가 서로를 잊고 살게 될지, 아니면 기억을 놓지 못한 채 영원히 괴로울 지.

 

        마지막 바램이라면 나는 당신을 기억하고 싶소. 
        목표도 없는 여생에 그 기억조차 없다는 건, 지옥일듯 해서.
        그리고 당신은, 그리고 당신은, 훗날 이 글을 혹시나 읽게 되더라도 누구를 향한 서신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길 바라오.

                                                                                                                       

                                                                                                김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