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찬란한
2013.11.22 딱 그만큼
선자:
2014. 5. 12. 00:49
시간의 매정함 속에서 검게 그을려 버린 바나나처럼
맛이 바래고 색이 바래버린 그것처럼 딱 그 짝이었다.
벌레가 꼬이고 겉모습도 흉물스러워져버린 지고 있는 과일을 덤덤하게 씹어보았다.
코 끝이 핑 하고 아찔했다.
과일이 상하면 취기가 올라오는 구나.
맛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과일도 나도 정상이 아닌 그 때에 상한척 취한척
변함을 감지한다.
변함을 감지하는 것은 언제나 이렇듯 냉정하고 아찔하게 다가온다.
혀 끝을, 코 끝을, 미간을 날카롭게 긁고 지나간다.
사람은 변한다. 음식이 상하는 것 처럼.
성격도 변하고 상황도 변하고 감정도 변한다. 그것이 참 의식적이지 않은 만큼 모질다.
차라리 과일은 부패의 아찔함을 취기의 알싸함이 위로해준다지만
질려버린 우리의 관계는, 텅 빈 너의 눈동자는, 무엇으로 위로받는단 말인가.
차라리,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더라면. 나의 어리석던 우쭐댐과 결점과 소소한 이야깃거리들.
너와 나누었던 그것들이 불현듯 공허한 가슴에 박힌다.
말은 하지 않을 수록 이로운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잘난척도 못난척도 나의 이야기도 너의 이야기도.
자유롭게 유영하는 시간의 틈바구니에서 그것들이 무뎌지고 진부해지고. 그런 두려운 생각이 든다.
나는 상한척 취한척 모른척
너의 변함을 감지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