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찬란한

송구스럽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선자: 2014. 5. 12. 00:50





<송구스럽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안녕하냐는 물음에 답해봅니다. 우리는 꽤나 안녕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대답하건데 우리는 안녕합니다.

연일 벌어지는 여러 가지 이슈들로 정신 차리기 어렵고, 시험 때문에 골머리를 썩지만
친구와 밥을 먹으며, 술 한 잔 나누며 오가는 잘 지내냐는 인사에 답합니다. “별일 없지 뭐”
국정원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로 트위터의 “리트윗”으로 우리의 관심을 표명하며
마음의 짐을 덜었으니까요.
선서도 하지 않은 증인들을 심문하는 대신 용기 있는 고발자에게 ‘광주의 경찰’이라 불러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솔직히 방학 때 할 일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 일이 있었나 싶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은 사상의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죄로
구속돼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자유도 좋지만 종북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닌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관심을 거두고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즐길 수 있었으니 실로 안녕했지요.

소신껏 수사지휘 중인 검찰총장이 낙마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수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직자의 품위는 중요한 것이니까요. 그럴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고, 주민들이 죽어나갔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원전에 반대하고,
공권력에 시민들이 탄압당하고 있지만, 우리는 밀양에 살지 않으니까요.

광주의 진실을 밝히다 테러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저는 신부에게 전두환의 사위였던
국회위원이 종북이라 욕하지만 우리는 안녕합니다. “또 종북몰이야?” 싶었습니다.
한 동안 저러다 말겠지 했어요.

행정부를 견제하라고 한 표 행사해 뽑은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을, 노동 3권을 부정하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가진 국민을 용납하지 않겠다던 국회의원이
제명하겠다고 동의안을 제출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며칠을 시달렸던 과제를 오늘 막 끝마쳤으니까요.

철도민영화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위해제를 당해도
우리는 안녕합니다.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책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공부 좀 했네.
뿌듯합니다. 안녕하지요.

요컨대, 안녕합니다. 시끌벅적한 와중에도 안녕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체제의, 정권의 부조리를 논하면서도 ‘변화’보다는 ‘적응’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적응을 위한 노력의 성과를 얻을 때마다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안녕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너무나도 불편합니다. 시험기간을 맞이하는 것도,
하기 싫은 공부를 손에 붙잡고 있는 것도 처음이 아님에도 불편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안녕할 것 같았는데, 우리보다 더 안녕할 것 같았는데 아닌가봅니다.
다들 안녕하지 못하다 하시며, 안녕할 수 없는 길을 걸으시려는 걸 보니 불편합니다.
지켜보는 우리는 안녕해서 불편합니다. 우리도 실제로는 안녕하지 못한 처지가 아닐까싶어
불편합니다.?이 부족한 글이 여기 붙게 된 것도 우리의 불편함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안녕하지 못하다는 목소리 옆에 함께할 자격이 있나 싶어 염려되지만,
우리는 불편하기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안녕할 수 없는 이유를
듣고자 함께 하고 싶습니다.

어제도 안녕했고, 오늘도 안녕하지만, 
불편한 요즘에 문득 내일도 안녕할지 몰라서 함께 하고자 합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 09학번 이종훈, 홍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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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껍데기 안에서 공허한 손으로 SNS 버튼들을 누르며 미숙한 마음을 표현하려 했던 그들이

이제는 두려움 속에서 걸어나와 당당히 이름 석자를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투박한 전지에 또박또박 담긴 일상의 인삿말에서 세련된 신념이 느껴진다.

가벼운 안부를 묻는 것처럼, 사소하게 말문을 연 담담한 고백과 그것의 필체에는,

미처 성숙하진 못했으나 결코 어리석진 않았던 그동안의 절절함이 느껴져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용기있는 우리들의 진일보가 아름답고 눈이 부셔서 울분을 터뜨릴 수 밖에 없다.

세상에는 아주 간단한 이치가 존재한다. 잔잔한 물결은 치솟는 불길을 이긴다.

안녕을 강요받아야만 했던 이 시대 이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고요하지만 분명한 분노가 시작되고 있다.

그동안 안녕한 줄로만 믿고 바쁘게 지나치는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워 진심어린 안부를 물어준 그들에게 참으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