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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찬란한

2016.3.26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나는 참 피곤한 사람이다. 분기마다 너울대는 기복을 들키지 않고자 '가꾼' 무표정으로 매일 출근을 했다. 출근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민망한 아르바이트였지만 고마운 사람들 덕에 버틸 수 있었던 하루하루 였다.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부러운 사람들이 오가는 3호선 이었다. 어떤 때는 평일 낮에 나들이를 떠나는 모양새가 부러웠다. 또 어떤 때는 직장인들의 버젓한 피로함이 철없이 부러웠다. 

 

 그런 날들에 문득 아르바이트를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 만으로 갓 스무살이 되었을 때 쓴 전공 변경 사유서를 읽어보았다. 보통은 과거의 글을 읽을 때면 부끄러운 감정이 제일 먼저 들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시려왔다. 서툰 글에서는 겁 없던 스무살의 패기가 느껴졌다. 그 때의 나는 세상은 미처 몰랐어도 하고 싶은 일은 명확히 알았다. 서글퍼졌다. 몇 년이 흐른 뒤 그 때보다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고 그 사이를 미끄러지듯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만큼 또 번들거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그 몇 년 사이에 모든 일들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되어버렸다. 현재를 사는 내가 가장 행복할 것을 바라며 선택지를 적어왔던 과거의 나에게 송구스럽게도 나는 지금 행복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내게 이 세상을 살아야만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일을 그만둔 건 어쩌면 내 정신의 어딘가에서 경고의 신호탄을 날려서 일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 간 나는 내 답안지에 주관식으로 답을 써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출제자의 의도를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제자는, 이 사회와 시대는, 나에게 객관식의 답을 써 낼 것을 명한다. 이 전 문항까지는 '뭐, 그래도 괜찮아' 였다면 이번 문항부터는 '이래야만 해'라고 그것은 강하게 말하고 있다. 지금의 괴로움은 내가 그 답을 모른다는 데에 기인한다. 뒤엉킨 시간 속에서 미래의 나는 답을 요구하고 있을텐데 내 펜은 아직 1번과 3번 사이를 왔다갔다하고 있다. 시간은 째깍째깍 흘러만 가는데. 그래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심정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 번호나 찍지 않음은, 알량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참 피곤한 사람이다. 이제 일을 그만두어서 마땅한 수입원이 없는데도 고집을 부린다. 이것저것 따지면서 체면을 차리는데 급급한 자아가 한푼 두푼 한살 두살 숫자에 예민한 자아에게 구박을 받는다. 버는 것도 없으면서 불매를 하고 후원을 하고 지랄을 한다, 하고. 전자의 자아는 할 줄 아는게 헛기침 밖에 없어 큼큼거린다. 둘 다 쪼다같은 놈들이다. 후자의 자아는 '보여지기 위한' 자아다. 나는 제법 사회생활도 잘하고 성향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우며 누구의 말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 때만큼은 온전히 후자의 자아가 되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지친 몸을 침대에 뉘이면 하루종일 꽁해있던 전자의 자아가 뛰쳐나와 기도한다. '아, 이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지게 해주세요.'


 어떤 집안의 비극은 내 어머니가 싫어하는 내 아버지의 것을 내가 닮은 데서 비롯되기도 한다. 엄마는 걱정이 되어 소리쳤지만 나에게는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 자리에 못이 박힌 듯 서서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방으로 걸어들어가면서 한걸음 한걸음 물 속으로 잠겨 들어갔다. 그 날, 내 '체면 자아'는 소꿉 친구를 잃었다. 비참함이 멍울이 되어 가시질 않았던 일주일이었다. 


 초등학생 때 우리집에는 미운오리새끼의 영어 버전 애니메이션 비디오가 있었다. 나는 그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가 마음에 안들어 몇 번 보지 않았다. 작은 보습 학원에 다니던 시절 그래도 어린 마음에, 영어 시간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가져갔다가 그대로 기부하듯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 나는 때로 매운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에 반주를 곁들이는 것도 좋아한다. 야식으로는 같은 값이면 치킨보다는 깻잎에 회 한점 얹어먹는 것을 더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나만 이렇다. 가족이니까 서로 맞춰주고 살아가면서도 소수의 음식 취향을 가진 것이 때때로 섭섭하긴 했었는데, 그 긴 일주일 동안 문득 그게 그렇게 서러워져서 우습게도, 울고 말았다. 


 우울해지면 가끔 찾아보는 영상이 있다. 스위스의 한 할머니가 조력 자살로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영상이다. 스위스에서 조력 자살은 합법이다. 영상 속 할머니는 친구들 곁에서 초콜릿을 먹으며 잠에 들듯, 조용히 숨을 거둔다. 자살은 사회에서 금기시 되어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나는 왠지 괜찮게 잘 살다가 문득 자살로 생을 마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라는 말을 했을 때 촌스럽게도 내심 놀랐다. 그러다 그가 지은 평온한 표정에 불현듯 깨달았다. 태어나는 것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데 죽음만큼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뭐 그리 나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죽음은 나에게 최후의 평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녹록치 않은 현세의 고통 속에서 나를 구원해줄 최후의 보루. 그러나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는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식이에 관심이 많다. 공장 축산을 반대하며 페스코 채식을 시작한지 1년 반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피로해지거나 몸이 무거워짐을 느끼면 바짝 음식을 조인다. 덕분에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몸이 제법 가벼워진 느낌이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 클로로필과 유산균, 비타민 등을 챙겨 먹고 탄수화물을 최소로 섭취하고 녹색 채소와 생선 위주로 식사를 한다. 살짝 허기가 지면 아몬드를 먹거나 우엉차를 마시곤 한다. 이제는 너무 배가 부른 상태보다 살짝 허기진 상태에서 잠을 자는 것이 편안하다. 체외 만큼이나 체내를 깨끗이 하는 것은 중요하다. 식단을 꾸리면서 아직 유기농까지는 고려하지 못했는데 (경제적인 이유에서도) GMO문제가 불거지면서 한살림 등에 가입하여 유기농으로 식단을 구성하는 것도 고려 중이다. 마크로바이오틱에 관심이 많아 여유가 되면 꼭 정식으로 배워도 보고 싶다. 제철 음식과 지역에서 나는 음식으로 삶을 정화하고 싶다. 그것이 어쩌면 타고나길 피곤한 사람인 내가, 세상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일까. 


 오늘도 나는 눈을 감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자연과 하나되어 서 있는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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