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찬란한

2016.7.28 메마른 밤, 행운을 빈다.




<1> 메마른 밤, 행운을 빈다.   

 

 생각해보면 메마른 가로수 길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가끔 가로수 길을 갔었는데 그 때마다 비가 내렸기 때문이다. 교통이 불편해서 이제까지 겨우 몇 번 갔을 뿐인데도 그렇다. 집에서 먼 편이지만 굳이 가로수 길을 찾았던 이유는 매번 제각각 이었다. 그러나 하나로 묶어보면 단순하다. 한껏 꾸미고 제법 값이 나가는 브런치를 먹으며 괜히 기분 내고 싶을 때, 먼 길을 돌아 그 곳을 가곤 했다. 사실 막상 가보면 길다랗게 늘어선, 흔하디 흔한 가로수들 만큼이나 특별한 것도 없는 동네다. 그래서 신사동 근처에 사는 사람은 특히 더 공감을 못할 것이다. 여하튼 멀리 사는 사람에겐 마음을 먹어야 한 번 갈까 말까 한 곳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껏 멋을 부리고 막상 도착해보면 매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다.


 미리 기상 예보를 보고 가면 어떻겠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 어디 멀리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서울 안에서 이동하는데 날씨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았다고 대답한다면 오만일까. 역시 오만을 부리는 인간에게 하늘은 그렇게 벌을 주나 보다. 아니 이건 변명이다. 인생에서 늘상 맑게 개인 가로수 길을 기대했고, 그것이 비 때문에 매번 깨졌다는 것은 사실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애초에 물기를 머금은 대부분의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날씨는 말할 것도 없고 먹는 것도 진밥 보다는 된밥을 더 좋아하고 시리얼은 바삭할 때 먹는 것이 더 입에 맞으니까. 심지어 몸에 물이 닿는 게 싫어서 물놀이도 좋아하지 않는다. 참 타고나길 건조한 사람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스스로 건조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건조한 사람이란 왠지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인간 이거나 노력 따위는 할 줄 모르는 미지근한 인생을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건조하지 않은 사람인 척 살고자 노력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어떤 이들을 본받아 열정으로 늘 젖어있는 사람인 척 했다. 그래야만 이 사회에 편입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작이 잘 타오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건조하기 때문이란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머로의 이야기는 작은 울림을 줬다. 그는 50년대 미국 사회의 광기 어린 매카시즘에 당당히 맞서 승리했던 한 TV 저널리스트이다. 꽁꽁 얼어붙은 냉전 시대를 뜨겁게 녹여버릴 수 있었던 것은 눈물 어린 호소도, 침 튀기는 욕설도 아닌, 건조하지만 논리적이고 맹렬한 머로의 비판 이었던 것이다. 매카시에겐 승리했지만 결국 그의 방송은 외압으로 인해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마지막 연설에서, 텔레비전이 "때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팍팍한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그의 메마른 외침은 영원히 회자될 것이다. 이렇게 타고난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꿋꿋이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때로 감동을 준다. 그들처럼 살고 싶게 만든다.


 이제는 타고나길 건조한 사람이란 걸 인정하고 그 방식대로 살아가고 싶다. 타고난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자 한다. 몇일 째 기상 예보가 어긋나고 있다. 이번주 내내 비가 온다길래 우산을 꼭 넣어가지고 다녔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메마른 밤이다. 이러다가 또 내일 아침 꾸미고 나서면 갑작스럽게 비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란 늘 그런 법이니까. 그래도 모처럼 새삼스러운 다짐을 되새긴 오늘밤 만큼은 한 오래된 방송의 끝 인사를 간직한 채 잠들고 싶다. "Good night, good luck 편안한 밤 되시고, 행운을 빕니다." (에드워드 머로 Edward Murrow)

'W:찬란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