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인은 침대에 누워 아주 편안한 자세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고 있었다.
멋진 신세계를 읽었다. 북크로싱 초반 내가 읽었던 조지 오웰의 1984와 디스토피아 양대 산맥을 이루는 소설 멋진 신세계, 1984보다는 쉬운 문체였지만 정말 넓고 독특한 세계관을 구현해 낸 소설이었다.
그리고 1984와 달리, 미래 세계에 펼쳐질 우울한 단상을 넘어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는 내재적인 문제에 더 다가간 것 같았다. '문명'이 가져다 준, 소위 '행복'이라는 것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가 뽑은 이 소설의 세 가지 장면은 다음과 같다.
1. 소설 속, 문명의 세계에 너무나도 잘 적응해 살고 있는 여자 레니나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넘어와 괴로워하는 남자 존을 유혹하는 장면이다.
「 "반가워하지 않는다고요? 오, 정말 내 마음을 아신다면..."
그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 보았다.
"오 사모하는 레니나,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그대여. 오, 당신은 정말 너무나 완벽해요."
그녀는 존의 말을 들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 레니나는 더욱 가까이 다가섰다. 그때 갑자기 존이 벌떡 일어났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요. 내가 당신에게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뜻입니다. 아무튼 절대로 무가치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래서 난 무엇인가를 하고 싶었어요."
"그게 왜 필요한 거죠?"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녀는 짜증이 났다. 입술을 내밀고 앞으로 다가갔는데도 갑자기 멍청한 바보처럼 일어나 뒤로 물러서다니.
~ "멜페이스에서는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면 사자의 가죽을 가져다 주어야 합니다. 사자가 아니면 늑대 가죽이라도..."
"영국에서는 사자 같은 건 없어요." 레니나는 톡 쏘듯이 말했다.
그러자 존이 경멸과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
"~ 난 뭐든지 할거예요. 뭐든지 말만 해요.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 수만 있다면, 당신이 원한다면 어떤 괴로운 일이라도 기꺼이... 지금 내 마음이 그렇습니다. 원한다면 지금 당장 마루라도 쓸게요."
"하지만 여기에는 진공청소기가 있어요.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요."
"물론 필요야 없겠죠. 다만 나는 천한 일도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당신이 원한다면 어떤 일도 견뎌낼 수 있어요. 알겠어요?"
"하지만 진공청소기만 있으면..."
"그런 뜻이 아니에요. ~ 왜라니요? 당신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 레니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 오, 레니나.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존은 거의 절망적으로 말했다.
~"제 말 들어보세요. 멜페이스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결혼을 합니다."
"뭘 한다고요?" 레니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이 남자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영원히, 영원히 같이 살자는 약속을 한다는 말이죠..."
"그런 끔찍한 것을!" 레니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주세요. 정말로 나를 좋아하나요, 네?" 침묵이 흐르고 마주친 두 눈만이 빛을 내고 있었다.
"레니나, 난 당신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존이 갈구하는 듯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말하는 거죠? 왜 진공청소기니, 사자니, 매듭이니 하면서 날 괴롭히는 거냐고요?"
~ 그녀는 갑자기 그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이 와 닿았다. ~ 공포,공포,공포... 그는 그녀에게서 빠져나오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레니나의 손은 풀리지 않았다.
~"어두운 동굴이 가장 알맞은 장소라 할지라도 우리의 사악한 영혼이 아무리 강하게 유혹한다 할지라도 내 명예는 결코 탐욕으로 물들지 않을 거예요, 레니나. 절대로, 절대로!"
"당신은 어리석어요! 나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해요. 당신이 나를 그렇게 사랑한다면 왜 진작 그렇다고 얘기하지 않았나요?"
~ "레니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죠?"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천천히 옷을 벗었다. 연한 복숭아빛 속옷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창살 사이로 남자의 눈을 유혹하는 젖꼭지는 모두 ...(아테네의 타이먼 제4막 제3장)" 큰 소리로 울리는 노랫소리와 같은 주술적인 말들이 그녀를 더 위험하게, 더 매혹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이 얼마나 부드럽고 날카로운가! 이성속으로 파고들며 결심을 굳히고 있지 않은가.
"아주 굳센 맹세도 뜨거운 핏속의 불길 앞에서는 한낱 지푸라기에 불과하다. 더 절제하라. 그렇지 않으면...(폭풍우 제 4막 제1장)"
~ 존이 그녀의 팔을 붙잡아서는 그녀를 조금 밀어냈다.
"오! 나를 괴롭히는군요. 당신은..."
그녀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눈을 떴다. 사납고 창백한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진 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왜 그래요, 존?"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 "매춘부! 이 뻔뻔스러운 창녀!"
~"굴뚝새나 날아다니는 작은 파리까지도 내 눈에는 음탕하게 보이는구나." 존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주술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 오, 그대는 독초로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향기롭기 때문에 코가 아플 정도구나. 이 훌륭한 책은 거기에다 '창녀'라고 써넣기 위해서 만들어졌단 말인가? 하늘도 그것 때문에 코를 막고...(오셀로 제 4막 제2장)"
~ 찰칵. 전화를 끊는 소리가 들리고 급히 서두르는 발소리와 함께 쾅 하는 문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적막이 찾아들었다. ~ 그녀는 살그머니 방으로 나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가슴이 몹시 뛰었다. 잠시 가슴을 진정시키고 방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
레니나는 어떻게 이야기하면 귀족아가씨 같다. 곱게 자란 문명 아가씨. 멋진 신세계에 길들여져, 괴로울 땐 소마를 먹고 여러명의 남자와 만나며 이 세계가 이상하다는 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며 그 세계에서 만족을 느끼는 인물이다. 반면 존은 문명의 세계에서 외딴 야만의 곳에 떨어진 어머니 린다로부터 태어난, 외모는 문명인이나 야만의 세계에서 자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인물이자 이 소설의 주된 인물이다.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둘의 사랑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장막 때문이다. 장막은 단순히 문명과 미개에서 오는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첫번째 장면으로 골랐다.
레니나가 사는 세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마이너스'적인 감정, 조건을 최대한 삭제 시킨 세계다. 이 세계에는 괴로움도 없고 열등감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슬픔도, 어찌보면 죽음도 없다. '안정'을 최우선 하는 이 세계는 이런 부정적인 것들을 없애기 위해 인간 관계도 최소화, 가족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연인도 없다. 그저 뜻이 맞으면 하룻밤 데이트를 하면 그만이다. 오락만이 남은 세상.
그러나 존이 온 멜페이스는 다르다. 멜페이스, 즉 문명의 영국이 "야만(미개)"라고 규정짓고 있는 비문명화된 사회는 아직 결혼이 남아있고 종교가 남아있으며 불안정하고 불안하지만 인간적인 사회다. 그 곳에서는 개인이 있고 가정이 있으며 인간적인 근원에 대한 사색과 철학이 있다.
서로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온 남녀가 사랑을 느낀다. 그러나 서로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너무 다르다. 같은 인간임에도, 마치 다른 종을 보는 것 같다.
레니나는 자신이 살아온 문명세계가 그렇듯, "몸으로 들이댄다" 그녀에겐 그것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사랑의 전부다. 그러나 존은 그런 레니나를 보며 기겁한다.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평생을 약속하는 결혼 풍습이 살아있는 멜페이스에서 온 존은, 레니나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점점 깊은 관계로 발전해가, 자신의 사랑을 행동으로 말로써 표현해서 그녀의 마음을 얻고자 한다.
고전 문학이 영원히 사라진 시대에서, 세익스피어 작품의 대사들을 되뇌이며 몸으로 들이대는 여자를 기겁하듯 거부하는 남자, 어찌보면 매우 우스운 장면인데, 두 문화가 충돌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통해 소설은 묻는다. 어느 곳이 문명이고, 어느 곳이 야만인가?
마치 제국주의 시대 제1세계가 제3세계를 보고 규정지었던 사회진화론을 보는 듯하다.
고도로 발달된 과학과 의학, 위생, 안정, 평화, 불필요해진 고통 다시 말해 우리가 늘 꿈꾸던 '이상 사회'가, '문명 사회'가 인간의 역사의 최종 종착점인가.
우리가 달려온, 달려가고 있는 이 길은 옳은 길인가 우리는 이 시점에서 무엇을 살펴보아야 하는가.
2. 멋진 신세계의 회장인 몬드와 존이 대화를 하는 장면이다.
「 "당신도 그걸 읽으셨나요? 영국에서는 그 책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는데."
무스타파 몬드는 존의 행동을 재미있게 관찰하며 대답했다. " 물론 아무도 없어요. 나는 그 책을 읽은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것은 금지된 책이니까요. 여기서는 내가 법률을 만들기 때문에 나는 법률을 어길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처벌 같은 것을 받지는 않죠."
~ "왜 그 책이 금지되었죠?" 존은 진지했다. 그는 셰익스피어를 읽었다는 사람을 만난 흥분에 사로잡혀 다른 것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오래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죠. 이곳에서는 오래된 것은 쓸모가 없으니까."
"아름다운 것이라도 말입니까?"
"아름다울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아주 매력적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오래된 것들에 마음이 끌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늘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좋아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그 새로운 것들이 너무 지겹고 변변치 못하는 것들뿐이더군요. 헬리콥터가 날아다니고 사람들은 키스만 하는 연극들..."
존은 역겨운지 얼굴을 찡그렸다.
"염소와 원숭이들!(오셀로 제4막 제1장)"
<오셀로>의 글귀만이 그의 모욕과 증오감을 적절히 표현해주었다.
"아무튼 길들여진 온순한 동물들이죠."
"~ 그런 작품은 영원히 쓰지 못할 거야. ~ 왜냐하면 우리의 세계는 오셀로의 세계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철없이는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어요. 반사회적인 불안정 없이는 비극을 만들 수 없고요. 지금 세계는 매우 안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고 있으며 얻을 수 없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아요. 그들은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병이 나는 일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요. 다행히도 정열이나 노령 같은 것을 모르고 있지요. 또 아버지나 어머니 같은 것으로 괴로워할 일도 없어요. 부인이나 아이들, 감정을 강력하게 지배하는 연인도 없고요. 그렇게 그들은 행동조절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도조절을 받은 대로 행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일이 잘못되면 소마가 그 일을 대신해주죠. 그렇습니다. 당신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밖에 던져버린 소마가요."
회장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존을 꾸짖듯이 말했다.
~ 존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았다. "<오셀로>는 훌륭해요. 그따위 촉각영화보다 훨씬 훌륭하다고요."
"물론이죠. 하지만 그것은 안정을 위해서 치르는 대가입니다. 행복 아니면 소위 고등예술이라고 부르는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거든요, 우리는 고등예술을 버리고, 그 대신에 촉각영화와 후각 오르간을 갖게 된 겁니다."」
「 "제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델타(하급 계급) 같은 것을 왜 만드는가 하는 겁니다. 무엇이든지 병 속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왜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알파 더블 플러스(최상류층)로 만들지 않죠?"
무스타파 몬드는 큰 소리로 웃더니 설명해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자멸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행복과 안정을 절대적으로 믿고 있어요. 알파만이 존재하는 사회는 틀림없이 불안정하고 비참할 것입니다. 알파만이 있는 공장을 생각해보세요. 훌륭한 유전을 받아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책임을 떠맡을 수 있도록 행동조절을 받은 개별적인 사람들에 의한 공장을 한 번 상상해보라고요. ~ 그것은 모순투성이입니다. 알파의 병에서 나와 행동조절을 받은 사람이 엡실론 세미 모론의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완전히 미쳐버리거나 물건을 때려 부수거나 할 겁니다. 알파가 사회화되려면 알파에게는 알파의 일을 시켜야 합니다. 엡실론만이 엡실론적인 희생을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들은 그 희생을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엡실론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도록 행동조절이 되어 있으니까요. ~ 인구수는 빙산과 비슷한 형태가 되도록 만드는 게 좋습니다. 9분의 8은 물 밑에, 9분의 1은 물 위에."
"물 밑에 있는 사람들도 행복할까요?"
"적어도 물 위에 있는 사람들보다는 행복합니다. ~ 지독하다니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일을 좋아하죠. 어린아이들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전혀 정신이나 근육이 긴장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곱 시간 반 동안 힘들지도, 피곤하지도 않은 일을 한 다음에 소마를 배급받습니다. 게임도 하고 무제한적인 교제와 촉각영화 등을 즐길 수 있는데 그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 "하지만 저는 불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일을 편하게 하는 것을 더 좋아하지요."
"저는 신을 원합니다. 편안한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와 현실적인 위험과 자유를 원하고 선과 죄악을 원합니다."
"알 수 없군요. 왜 불행해지는 권리만 원하는지."
"네, 그래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존은 잠깐 숨을 들이마시며 무스타파 몬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결론을 짓듯이 말했다.」
두번째 장면은 이 멋진 신세계의 총 책임자인 회장, 무스타파 몬드와 존이 독대하는 장면이다. 무스타파 몬드 회장은, 그들의 시각에서 미친 짓을 하다 유명해진 야만인 존과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 이 멋진 신세계 속 문명 세계, 소설의 세계관이 상세히 서술되어있다. '안정'과 '평화'를 최우선으로 하는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즐거운 것만을 추구하고 스스로의 운명지어진 삶에 만족하게끔 행동조절이 되어 있다. 한마디로 "교육화된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겐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정도 없고 늙음도 없으며 가족 관계에 얽매일 필요도, 연인관계에서 감정을 소모할 필요도, 자신의 고통을 의탁할 신도 필요가 없다. 그 덕에 그들의 삶에 '비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더이상 비극을 다룬 예술 작품을 생산해낼 필요도, 낼수도 없게 된것이다. 회장의 말대로 '고등예술을 버리고 오락이 가득한 교육화된 행복을 택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올더스 헉슬리가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존의 입을 통해 전달된다.
오랜 회장과의 대화의 끝에서, "불행하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존의 굳은 얼굴이 인상깊다.
학습화된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다. 자연스러운 행복은 정말 얻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삶의 모든 불행이라는 진흙 속에서만 힘겹게 피어나는 연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3. 존의 죽음
「 그 영화가 상영된 이후 존의 전원적인 고독은 수많은 헬리콥터들이 몰려들면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그래도 존은 열심히 채소밭을 갈았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생가그이 내용을 열심히 파헤쳤다. 죽음. 그는 묵묵히 삽질을 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또 한 번, 우리의 어제는 모두 티끌로 돌아갈 바보들을 위해 죽음의 길을 암시해준 것이다. (맥베스) 그이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하늘에서 천둥이 울렸다. 그는 다시 흙을 한 삽 더 떴다. 린다는 왜 죽었는가? 왜 그녀는 점점 더 인간 이하로 타락하여 마침내는 .... 그는 몸을 떨었다. 신의 입맞춤을 받은 썩은 살!(햄릿) 그는 삽 위에 발을 얹고 단단한 땅 속으로 꾹 밟아 눌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곤충을 함부로 다루는 것과 같이 신은 우리를 다룬다. 그들은 재미삼아 우리를 죽인다.(리어왕) 다시 천둥이 울렸다. 스스로 진실하다고 선언하며, 진실 이상의 진실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는 말. 그런데도 글로스터는 신을 일컬어 늘 자비심이 가득하다고 불렀다. (리어왕) 게다가 가장 좋은 휴식은 잠자는 것이므로 그대는 스스로 잠자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대는 잠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 죽음을 몹시 두려워한다.(자에는 자로) 잠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 잠. 꿈을 꾸려고 하는 것. 그의 삽이 돌에 부딪쳤다. 그는 허리를 굽혀 돌을 집어 들었다. 죽음이라는 잠 속에는 어떤 꿈이 있을까?(햄릿)
~ 그러나 고개를 들어 하능릉 보니 헬리콥터들이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메뚜기 처럼 날아와서는 공중에 머물러 있다가 그의 주위에 있는 히스 덤불에 착륙했다.
흰 인조견 플란넬을 입은 남자들과 인조견 파자마나 벨벳 바지와 소매가 없고 지퍼가 반밖에 달리지 않은 셔츠를 입은 여자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렸다. 한 명씩 차례로 내리더니 마침내는 수십 명의 남녀들이 등대 주위에 넓은 원을 그리고 서서 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마치 원숭이를 구경하듯이 웃으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고 땅콩과 성호르몬 껌과 내분비물질 버터 빵부스러기들을 던졌다. 그들의 수는 점차 불어났다. 계속해서 헬리콥터들이 날아들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존을 둘러쌌다.
~ "꺼져! 모두 꺼지란 말이야!" 그는 성난 사자처럼 폭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뼉 치는 소리도 났다. 원숭이가 말을 한 것이다.
"야만인이다!" 그들은 왁자지껄하게 웃으면서 야유를 퍼부었다.
~ "도대체 왜 나를 그냥 놔두지 않는 거야?" 존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슬픔이 섞여 있었다.」
「 마지막 헬리콥터는 자정이 지나서야 그곳을 떠났다. 소마에 마취된 존은 육욕적인 광기에 지친 채 히스 덤불 속에 누워 잠들었다. 그가 눈을 떴을 때에는 이미 해가 높이 솟아 있었다. ~ 그날 저녁 혹스백을 지나서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헬리콥터들이 거대한 구름을 이루면서 날아들었다. 어젯밤에 일어난 요란했던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었기 때문이다.
헬리콥터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야만인 씨, 야만인 씨!"
첫 번재 내린 사람이 그를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등대의 문은 조금 열려 있었다. 그들은 문을 활짝 열고 어두컴컴한 등대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 끝에 있는 활 모양의 문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아치형의 통로 바로 밑에 사람의 다리가 매달린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존은 고독 그 자체의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어머니 린다의 죽음, 평생을 그리워하던 문명세계로 돌아가 소마 중독으로 죽은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녀의 늙은 주검을 신기하듯이 바라보는 역겨운 신세계의 사람들. 자유를 부르짖으며 소마를 창 밖으로 던지는 존, 회장 몬드와의 해답을 찾을 수 없었던 대화. 불행 속에서 자연스러운 행복을 찾고 싶은 그의 결심. 존은 도시를 떠나 작은 등대에 자기의 터전을 마련해 회개하며 텃밭을 가꾼다.
그러나 그런 그를 문명 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언론사에서 취재해가고 몰래 사진을 찍고, 나중에는 대놓고 동물원 우리 속 동물처럼 구경하고 조롱하고 야유한다. 소설은, 우리의 야만인 존이, 그의 작은 공간에서 누리려던 소박한 행복마저 신세계 사람들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뒤 결국 죽음을 택하면서 끝이 난다.
헉슬리는 그를 꼭 죽였어야만 했나? 그렇다. 나는 존이 죽음으로써 이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한다. 존의 죽음으로 이 멋진 신세계가 결코 이상 사회가 아니라는 헉슬리의 메세지가 분명하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존이 죽은 뒤에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별거 아닌 해프닝으로 생각할 것까지 그려진다. 진정한 디스토피아의 완성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완성을 이룬 이 결말 부분을, 마지막 장면으로 꼽았다.
올더스 헉슬리가 이야기하는 멋진 신세계는 개인이 사라진 사회이자 학습화된 행복과 안정이 전부인 사회다. 우리가 사라졌으면 하는 것들, 고통, 슬픔, 괴로움, 고독, 불결 등 모든 삶의 비극적인 요소가 삭제된 이 공간에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해 보이는지 이 소설은 묻고 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향점은 무엇인지, 경계해야 할 이상은 무엇인지. 문명의 의미를 되짚으면서 전도된 이상과 행복의 가치를, 이 비극의 이야기 속에서 바로 세워 본다.
[북크로싱]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