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찬란한

내 이럴줄 알았지

 2010.9.30



아슬아슬 했다.

며칠 간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고 모든게 행복하고 그랬다.

그러나 역시나 - 변덕스럽고 쥐 콧구녕만한 내 속아지를 또 뒤집어 놓다니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긍정'과 생각만해도 짜증이 솟구치는 '부정'이라는 이름의 틈이 ,손톱으로 쿡 찌르면 퍽 하고 뚫려버리는 한없이 얇은 창호지에 불과했음을 또 다시 깨달아버렸다.오랜만에 드는 이 감정은 내 자신에 대한 허탈감과 허무감을 넘어선 회의감이었다.

 

더럽고 치사했다.이건 내가 며칠 간 망각하고 있던 세상의 이치일까요.나는 내가 까먹고 있는게 아니라 세상이 정말로 이처럼 더럽고 치사하지 않길 바랬는데.그게 그렇게 순식간에 깨어지는 착각이었을줄이야. 인생은 외줄타기가 아니라 아주 작은 한 점 미소의 단위의 한 점 위에 중심 잡고 서있는 것이다.그 미소의 점위에 서있는 나를 찍고있는  카메라를 줌아웃 시키면 그 점은 분명히 어떤 커다란 숫자의 한 부분일 것이다.그 숫자 위에서 위태롭게 두팔을 벌리고 중심을 잡고 있노라면 나는 내가 아닌 것이고 나의 주체는 필시 그 숫자 일거다.숫자는 한껏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비틀대고 있는 나를 하루에도 수십번씩 놀래킨다.

 

대학에 들어와서 느꼈지만 대학의 점수란 '주기위한 점수'가 아니라 '뺏기 위한 점수'다.마치 가운데 깃발을 꽂아놓고 서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깃발을 쓰러뜨리지 않고 모래를 많이 가져가는 게임을 하고있는데 내가 가져와서 쌓아놓은 모래를 누군가 한웅큼씩 아니면 한바구니씩 슥 슥 옆에서 가로채가는 느낌이다.나는 깃발을 쓰러뜨리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그 가져가는 검은 손을 잡아채서 비틀어버릴수도 없다.내 차례가 되기 전까지 내 손은 등뒤로 묶여져 있으니까.그리고 그 야비한 검은 손은 내가 손이 묶여있을 때만 슬금슬금 내 뒤에서 나와 내 눈앞에서 손가락을 꿈틀거리며 얄밉게 모래를 떠간다.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아니고 이런 불공평한 룰에 내가 대항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검은 손이 귀가 없기 때문이다.

 

걸음을 걸어서 지금 이 컴퓨터 앞에 앉기 까지 수없이 되뇌었다.내 착각이었어.화가난다 분노하고 싶다.내 잘못이 아니잖아.내 탓이 아닌데 왜 나는 이렇게 불쾌한데 왜 왜 왜왜왜왜왜왜!! 울고 싶었다.마침 엄마랑 통화를 했다.본의 아니게 엄마한테 짜증섞인 말투를 내버렸다.이러면 안되는데 나는 더이상 울고 싶으면 엉엉 울어버리는 어린이가 아닌데 - 그럼에도 전화를 끊자 무언가 울먹울먹한게 올라오는게 코하고 눈이 너무 아팠다.하지만 꾹 참았다. 대책없이 울어버리기엔 억울해서였다.

 

아침에 날씨가 많이 쌀쌀하길래 걱정했다. 내가 입고 나온 옷이 오늘 날씨에 맞는지 계속 고민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입고 돌아다녔다. 설사 맞지 않은 옷이라고 한들 달리 방법도 없고 그저 내몸에 걸쳐져 있으면 되지 뭐 라고 어리석게 생각했다.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다.내가 잘못한게 아니다.나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고 날씨가 날씨탓이다! 날씨탓이야! 내 잘못이 아니라고 - 또 이렇게 자책하고 불쾌해지는 날이 오다니.내 이럴 줄 알았다.

'W:찬란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취  (0) 2014.05.12
고통이 상대적이라 할지라도  (0) 2014.05.12
문득,  (0) 2014.05.12
이상理想  (0) 2014.05.12
시간이 흘러,  (0) 2014.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