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戀愛 : 사모하고 사랑하다.
이 드라마 속 내가 느낀 연애는 緣愛 :사랑은 잇닿은 인연으로 만들어 지는 것.
참으로 솔직한 제목.진솔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찾은 사랑의 실타래.
두 주인공 은호와 동진의 진중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서서히 풀려나가는 실타래를 보여준다.
이 안엔 사랑에 대한 그 어떤 허위와 과장,미화는 없다. 단지 16부작이라는 제약으로 집약은 있을지라도.
'사랑에 있어서 해피엔딩이란 존재할까 ?'
시작부터 이혼이라는 불안한 사랑의 엔딩으로 시작된다.
진부해진 관계,진부한 감정,진부한 눈빛,진부한 일상. 그 모든것들을 아우르는 신선한 시작.
이처럼 사뭇 신선하게 출발하는 이야기는 은호의 나긋나긋하지만 다소 피로한 음성이 귀에 박힌다.
"각자의 길을 가자고 헤어진 지 1년 6개월.
이혼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만날 일이 자꾸 생긴다."
끝내려고 했지만 끝내지지 않는 인연과 어쩔수 없다는 진부한 표현으로 한때 부부였던 묘한 관계속에서
형식적이고 진부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사진을 찍고 마주친다.
어쩌면 결혼과 이혼, 지극히 의례적인 종이에 쓰여진,몇글자로 설명이 되는 그런 관계일지도 모르겠다.
이혼한 부부란, 서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시작이 두려운 관계다. 그러하면서도 은호와 동진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서로를 추억한다.
무의식의 추억은 의식적인 눈길로 이어져, 동진이 출근할 때 늘상 확인하는 은호의 자전거와 같은 일상이 된다.
그렇지만 한번의 실패가 가져다 주는 극한 관계의 두려움은 설렘보다는 다소 촌스러운 감정 견제로 나타난다.
그것은 이국적인 음악과 분위기의 술집에서 장난처럼 시작되는 묘한 여섯명의 관계에서 미묘한 신경전과 진심을 숨긴 채 시작되는 새로운 인연들로서 대변된다.
민현중은 흔하지 않은 연하의 남자다. 처음 등장은 엉뚱하고 돌발적이고 범상치 않으며 어리게만 느껴지는, 그래서 다소 거부감이 드는 인물이었지만 차츰 유은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며 차가운 내면을 은호에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는 동진보다 성숙한 모습을 나타낸다. 돈이 많고 외모가 출중해도 행복하지 않았던 남자. 결혼을 하루 앞둔 행복감에 가득 찬 평범한 여자의 '심장이 뛴다'라는 한마디에 담긴 삶의 소소한 행복을 깨닫고는 그 말에 인생을 그대로 대입시켜 버리는 순수한 남자. 민현중을 바라보는 시청자는 유은호의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고 의문과 약간의 미움에서 연민으로 시각을 전환한다.
김미연은 경박스럽고 목소리 톤만큼 깍쟁이 같은 여자로 동진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민현중과 다르게 김미연을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그녀의 알듯 모를듯한 속내가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을 캐치할수 있다. 어쩌면 그녀가 너무 바보같을 정도로 솔직해서 인지도. 어쨌든 동진의 다른 남자와는 다른 진중하고 다정한 모습에 이끌리는 미연은, 그것을 사랑이라 칭한다. 진중하지만, 딱 진중한 만큼의 질투심과 자존심을 지닌 평범한 남자 동진은 자신보다 훨씬 나아보이는 현중과 함께하는 은호에 대한 묘한 위기감에 관심에 없던 미연에게 다가가고, 그녀보단 그녀의 딸에게서 김미연을 바라본다. 남편에 대한 상처가 있는 김미연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어쩌면 남자로써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이 발휘된 걸지도 모를,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춘기 소년이 여선생님을 좋아하는 그런것이 아니라 이미 한번 사랑이란걸 경험해 본 남자가 다시 사랑에 대해 정의해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리곤 깨닫는다. 사랑은 더이상 설렘도, 연민도, 책임감도 아닌 익숙함 일지도 모른다는 걸.
동진의 두번째 여자, 정유경 역시 마찬가지다. 바르고, 여리고, 동진의 소년 시절을 되새겨주는 풋풋함이 어려있는 여자. 동진은 유경에게서 나오는 과거의 기억이 좋았고 그녀의 엄마같음이 좋았고 은호의 여집합적인 모습에 끌렸다. 그러나 유경에게 끊임없이 '유경아 행복하니' 라고 묻는 과정은 동진 자신에게 묻는 물음으로 돌아와 그에게 공허함만을 안겼을 것이다. 사랑은 죄책감도 아니고 책임감도 아니고 어쩔수 없는 것이어야만 한다.
"변명조차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 있다. 오직 후회만이 허락되는 순간이 있다. 후회하고 후회하고 죄책감이 바래질 때까지 후회하면서
잊을 수도 없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알아버린 지금의 내가 그 시간을 반복한대도 어쩔수 없는 순간이 있다."
15화. 나는 이 편이 이 드라마 전체를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지를 없애면 끝인 줄 알았던 모든 관계와 감정들이. 또다른 시작이었다는 걸 깨닫는 것.'
주인공 남녀의 본격적인 '연애시대' 15화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쿨한척 하지만 나만 혼자 질척거리는 것과 같은, 앞서 언급한 주변 인물들로 인해 더 복잡해진 은호와 동진의 관계가 드디어 '연애'를 시작하는 편. 현중과 윤수, 미연과 유경으로 은호와 동진은, 자신들의 지난날 '진부했던' 모든 감정과 일상들이 '익숙하다'는 틀에 갇힌 편협한 감정의 결과물이란 걸 깨닫는다. 그리고 그 '익숙하다'라는 프레임이 주는 안락함과 스스로가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깨달음으로 뒤늦은 연애를 시작한다. 어쩌면 그 진부했던 일상들 조차, 이 연애를 시작하기 위한 도움닫기 였을지도.
운명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늘 갖고 있는 생각은 그렇다. 운명이 있음 참 편하겠구나 - 그렇지만 동시에 운명의 끈에 얽매여 있어 슬플것 같다 -.라는 것. 그러나 때로는 운명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인생엔 수십가지가 존재한다.
은호와 동진의 관계도 어쩌면 그럴지도.
연애시대는 그런 드라마다. 슬프지만, 잔인하지만, 운명을 믿고 싶게 만드는 드라마.
이 작품이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단 16화 안에 참 많이도 그러나 정성스럽게 사랑이 놓여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할 줄 아는 ,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에 꼽는 드라마.
이별의 아픔, 재회의 기쁨, 시작의 설렘,
인생의 매 순간마다 사뭇 다르게 다가올 드라마.
20대 초반에 내가 이렇게 느꼈다면 20대 중반에는 또 다른 감정을 가지고 볼 수 있는 드라마. 개인적으로 30대에 한번 더 보고 싶다.
"일정한 슬픔 없이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까. 지금은 잃어버린 꿈, 호기심, 미래에 대한 희망. 언제부터 장래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게 된 걸까.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는 은호의 나래이션처럼 뒤늦게 깨달은 인생의 무언가를 오래도록 머릿속에 넣어두고 싶을 때, 진정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 짙은 어른들의 연애를 느껴보고 싶을 때 다시금 꺼내 보고 싶은 드라마, 연애시대.
드라마 연애시대는 오미자처럼 여러맛이 난다.
사랑에 있어서 해피엔딩은 존재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드라마들에서는 주인공 남녀가 결혼을 하면 해피엔딩이고 한명이 멀리 떠나거나 이별을 하면 새드엔딩이라고 하는데, 글쎄. 연애시대는 결혼이 남녀에게있어 꼭 해피엔딩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준다. 결혼 후에도 삶은 존재하니까.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결혼이라는 두글자에 담긴 진부함까지도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래서 은호가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고 말한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사랑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 그 자체가 '연애시대'가 아닐까.
연애 戀愛 와 연애 緣愛 .
옛 중국 고전에서 흘려진 손가락에 맺어져 있다는 보이지 않는 붉은 실과 함께 시 한편이 떠오른다.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
그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 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개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개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개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 푸른 밤,나희덕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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