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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내마,음

2014.3.7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 편견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개차반같은 삶은 하루살이와 같았다. 

됐어, 죽기밖에 더하겠어?

그러나 정말로 죽음을 눈 앞에 둔 하루살이가 되었을 때 모든 것들은 서글픈 분노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내, 

감히, 살아내고자 한다.

 무심코 사소하게 여겼던 생명의 가치가, 살아 있다는 것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순간

우리는 그 속에 늘상 내제되어 있던 죽음의 가치 또한 떠 안게 된다.

삶과 죽음은 늘 같이 존재하는 법이니까.

죽음이 있기에 삶을 다시 살아볼 용기를 가질 수 있는 법이니까.

이 모든 것들을 안고서야 비로소 잘난 카우보이 우드루프는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다.

불합리함에 눈을 뜨고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되새기며 '인간'으로서의 의미있는 삶을 감히, 살아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마치 로데오 경기에서 선수는 반드시 언젠가 소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단지 그것에 이르기 전까지 뜨겁게 벼텨내면 되는 것이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삶을 180도로 변화시키는 영화는 많다. 

그러나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화끈한 카우보이 우드루프는 말한다.

죽음을 눈 앞에 뒀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여전히 그는 그일것이다. 미처 몰랐지만, 삶이 죽음을 늘 내재해 왔던 것처럼.

정신없이 날뛰는 로데오처럼 그에게 삶이란 언제나, 한 번 신명나게 뛰고 떨어지는 로데오 경기였을 뿐이다.

역시 미처 몰랐지만, 산다는 것은 정말로 하루살이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경기는 단지 하룻밤의 허무한 욕망을 위해서가 아닌, 

그 하룻밤을 인간답게 하는 그 무수한 날개짓, 그 자체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