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란 쿤데라 책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소설가가 그에 대해 쓴 처음 한 문장으로 탄생한다."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한다.
소설가가 만든 가상의 인물들은 모태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가 그를 묘사한 가장 첫 문장에서 탄생한다는 말이다.
축약하면, 그가 처음으로 등장한 첫 문장에서 그 인물의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I discovered my cunt as a two-year-old"
님포매니악의 주인공이자 님포매니아(여자 색정증환자)인 조가 자신을 묘사한 거의 첫대사다.
나는 이 한마디가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앞으로 조가 말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의 서막을 알리는 문장이자,
조라는 인물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 색정증 환자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나는 궁금했다. 색정증을 앓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감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에 대한 느낌을 이 영화의 형식처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감각과 본능
영화는 시작부터 감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귀를 귀울여라. 시선을 유지하라.
까만화면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뭔가 의미있어보이는 카메라의 시점이동
그리고 조가 바닥에 쓰러져 있다.
제목 조차 색정증, 영화는 인간의 본성과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색정증" "성욕"을 주된 소재로 삼고 있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내밀한 본성이자 가장 민감한 감각이기도 한 면에서 이런 소재 설정은 매우 납득이 간다.
그래서 나는 조가 자신의 화려한 성적편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 작은 부분부분을 성욕 더 넓게는 인간의 모든 감각에 대입해 이해하였다.
이를테면 쾌락과 본성에만 충실하다가 끝내 불감증에 다다른 조의 이야기라든지,
오로지 감각과 본능만을 좇음으로써 조가 포기한 것들이라든지.
물론 이런 이해는 굉장히 표면적인 이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그렇게 관람하도록 구성되어 있는 것 같기에
또 이렇게 하면 내용이 잘 이해되기에 이런 방법을 택했다.
2. 위선
영화는 조가 셀리그먼에게 과거를 회상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셀리그먼은 나이든 남성인데 조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면서 계속해서 조의 방탕한 행동거지를 두둔하고 고상한 설명으로 합리화하려고한다.
조는 성욕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하고 있는데
셀리그먼은 듣더니 피보나치 수열이 어떻고 저떻고하면서 말이다.
셀리그먼은 조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데 조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주석을 달지말고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안되겠냐는 것이다.
셀리그먼이 억지 짜맞추기로 설명을 할때마다 샬롯 갱스부르, 극중에서 조의 표정이 나는 너무 재밌으면서도 공감갔다.
셀리그먼은 자신이 많은 책을 읽고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면서, 조의 상황을 안타깝게 느끼면서 조에게 친절을 베풀고 조에게 공감하는 척한다.
말그대로 교양인의 위선이다.
영화는 이처럼 교양있는 자들, 마치 성욕(본능)이라곤 없고 오로지 교육받은, 지성을 갖춘 인간임을 자처하는 자들을,
조의 반응과 표정으로 대신해 조롱하고 있다.
물론 이 주제의 정점은 결말 부분 일테다.
나는 이 영화가 이런 점에서 상당히 통쾌했다.
3. 불편함
님포매니악은 불편한 영화다.
포스터마저도 살색의 향연인 이 영화는, 남녀의 성기를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섹스신에 배우들이 실연을 하는 등 온갖 불편함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불편함을 넘어서, 나는 관객들을 가장 불편하게 하는 것은
이 영화가, 우리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조는 우리 사회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병인 색정증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도덕적 기준에서 보면 조는 문란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다보면 조의 행위들을 두둔하고 싶어진다.
왜냐하면 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결과에 충분히 힘들어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자신의 성욕에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녀는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며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간다.
문란하고, 혼돈 그 자체이며, 어쩌면 이기적이기까지 한 조의 삶은
다른 모든 인간들이 환상처럼 한번쯤 꿈꿔 본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을것이다.
그래서 불편하다.
분명히 반사회적이고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지만 한번 쯤 꿈꿔 본, 우리들의 판타지가 영화 속에선 낱낱이 구현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성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성욕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것을 포괄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것을 내재하고 있는 자들의 위선을 조롱하며 까발리고, 거기에 총알탄을 날린다.
그래서 불편하다.
그러나 이것들을 인정하고 나면 이 영화를 비교적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관객으로 하여금 그렇게 되게끔 만들어주는 힘이 이 영화에는 분명히 있다.
그리하여 영화는 4시간 동안 우리의 모든 구멍을 채워 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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