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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내마,음

2014.5.22 그녀(Her)





「 시나리오가 참 아름답다.

인공지능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 

자칫 유치해질 수도 있는 소재를 정말 아름답고 유쾌하게, 또 여운있게 풀어낸 것이 인상깊다.

아니 어찌보면 소재를 먼저 생각하고 살을 붙였다기 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위해 이 소재를 생각해 낸 것 같다.

그만큼 저 단순한 소재에 정말 많은 이야기와 주제와 대사가 담겨있다.


이별을 경험한 남자가 외로워 대체물로 시작한 OS와의 대화

그러나 그 속에서 우리는, 관객은, "인간"이라는 "이야기"를 찾게 된다.

극 중 OS인 사만다가 이야기하듯이, 한명의 인간은 한권의 책이다.

과거는 자신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되고 우리는 끝없이 이야기하고 듣고 

그로 인해 사랑받으며 사랑한다.


OS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테오도르는 문득 의문이 든다.

"내가 사만다에게 가지는 감정이 진짜일까? 우리는 진짜 관계일까?"

대필편지 작가 테오도르가 다른 사람을 위해 가짜 감정을 가지고 쓰는 그것처럼,

사만다는 그에게 대필편지일 뿐이었을까

'진짜' 감정, '진짜' 관계는 무엇일까 

"사랑은 공공연히 허락된 미친짓이야."

진짜고 가짜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고 끝없이 그 사람을 원하고, 그것은 '진실'된 진심어린 사랑이다.

그래서 그 관계는 아름다웠고 설렜고 그 이별은 슬픈 것이다.


영화는 수많은 언어들로 이루어진 대화들을 가지고 

인간의 '감정'에 대해 끝없이 이야기한다.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아픈 감정마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고차원적인 감정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능의 산물이다.

언어가 있어 감정이 있으며 감정이 있기에 언어가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담고 있는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

가까운 미래세대를 이야기하는 데 아이러니하게도 빈티지한 색감이다.

색감과 사만다가 연주하는 음악들이 조화롭게 어울려 영화를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균형을 맞춰준다.

다만 스칼렛 요한슨 목소리 너무 매력적이었으나, 누가 들어도 스칼렛 요한슨이라

좀 덜 유명하지만 목소리가 매력적인 다른 배우가 사만다를 했으면 영화의 의미가 더 분명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카메라 시점이 극 중 테오도르의 눈으로 옮겨지며 보여지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 그의 과거, 그의 이야기,

거기에서 우리는 세상에 공허(空虛)한 관계는 없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영화의 끝에서, 공허의 끝에서 그것을 발견한, 늘 답장을 피하던 테오도르 역시 

영화 속에서 처음으로 진심을 담은 편지를 완성해본다. 」